01. 돈버는 이야기/04. 원자재 & 채권

#1. 원유 시장의 이해 (feat. 미국, OPEC, 러시아)

Genie In Us 2021. 7. 14.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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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시장에서 가장 큰 아이템은 바로 원유!

에너지 섹터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재는 바로 원유입니다.

원유 선물 가격의 변화 추이를 보면서 앞으로의 경기의 방향성을 보기도 합니다.

[참고] 블룸 버그, 메리츠 증권 리서치 센터 

최근 WTI가 6월 한달 내에서만 10프로 상승하며, 유가 상방 압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결론 부터 말씀드리자면, 사우디/러시아와 UAE간의 감산 규모에 대한 갈등 때문입니다.

 

[각 국간 감산 규모에 대한 갈등 심화로 OPEC 합의 결렬]

 

7월 OPEC+ 회의를 통해 감산 안화 합의가 도출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막상 7월1일 부터 열린 회의에서는 추후 일정도 없이 합의가 결렬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OPEC+ 회의 불발로 인한 최근 불확실성 확대와 경기 개선으로 인한 수요 초과로 인하여

WTI가 75달러/배럴를 상회하며 201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는? OPEC 합의체 지속 여부가 바로 키가 될듯]

 

유가 병동성 확대 여부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UAE의 의견을 수렴하고, OPEC이 합의체를 지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가 결국 관건입니다.

이 카르텔이 붕괴된다면, 산유국 사이 경쟁적 증산이 이어져 OPEC은 가격 결정권을 잃게되고, 유가는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OPEC은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요?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원유 시장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쉽게 원유 시장의 역사를 풀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부터 원유는 에너지 원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주요 산유국은 어디였으며, 오일 메이져와 산유국과의 관계 등을 이해하여야 원유 시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OPEC과 카르텔의 역사


 

[1940s~1950s] 영미석유협약 (미국 & 영국) : 양국이 글로벌 원유 시장의 패권을 선점

[영국과 미국이 세계 패권을 잡으면서 원유 시추 이권을 차지함]

- 20세기초, 2차 산업혁명~두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주요 에너지원은 석탄에서 석유로 변화함

- 경제가 빠르게 확장하면서, 석유 수요가 빠르게 늘게 되고 결국 유 시추에 대한 이권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해짐

- (영국) 페르시아만에서 석유 개발을 주도

- (미국) 중동 석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중동 석유 개발 시작

 

[1944년 - 영미 석유 협약

- 영국은 석유 이익의 25%를 이란에 배분하고, 미국은 석유 이익의 50%를 사우디에 배분

- 양국은 국제석유위원회를 구성하여, 산유국의 생산량과 시장 조절 방안을 협의 하며, 공급자 우위 시장을 형성

 

[Standard Oil : 세븐 시스터즈와 오일 메이져의 시작]

- [세븐시스터즈] 7대 국제 메이져 석유회사들이 열강 정부의 힘을 기반으로 중동에서 석유 생산 패권을 장악

- 세븐시스터즈는 석유의 생산, 정제, 유통을 담당하고, 산유국은 수익의 일부를 배분.


 

[1960s] OPEC의 등장 

- [OPEC의 결성] 사우디, 베네수엘라,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가 참여

 

- [결성 이유] 오일 메이져들의 일방적인 공시가격 인하로부터 장지배력을 행사하여, 이권을 되찾기 위해 결성

 * 공시 산유국과 석유회사 간의 수익 분배는 공시 가격이 기준이였으나,

 * 공시 가격의 결정권은 오일메이져가 갖고 있어, 공시 가격 인하는 산유국의 수익 감소로 이어짐

 

- [초기 영향력은? 약했음...!]

 (1) (오일 메이져에게 의존적인 구조) 산유국들의 석유 개발/판매를 위한 기술/자본/판매망이 부족

 (2) (결속력 부족) 사우디와 이란의 종교적 갈등과 미국의 대규모 원조로 인하여 베네수엘라의 이탈 등

 (4) (공급 과잉) 원유 수요 대비 공급 과잉으로 OPEC 영향력이 미미

  * 1967년 3차 중동전쟁 시, 아랍 국가들은 원유 수출 중단을 결의했으나,

  * 그러나, 미국과 우호적인 이란은 원유 생산을 지속하고, 베네수엘라와 인도네시아도 생산량을 늘리면서

  * 오히려 경쟁적인 증산으로 이어져 공급과잉이 나타남.


 

[1970s] OPEC의 황금기 - 석유 초과 수요

- [국제 사회 미-영 지위 약화 > OPEC 주도권 강화]

 * 1971년 테헤란 협정과 트리폴린 협정으로 석유 분배와 가격에 대한 협상으로 산유국의 소유권 비중 확대

 * 베트남 전쟁(미국 지위 약화)과 영국 경제 불황으로 OPEC이 석유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

 

- [미국의 폭발적인 수요 > OPEC 산유국의 가격결정권 강화]

 * 1960년말 OECE에서 믹구은 원유 생산 능력의 100%를 가동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고,

 * 1970년대 초반 미국은 석유 수입 물량 폐지

 * 1956년 수에즈 위기때 미국의 잉여생산능력이 유럽의 에너지 위기를 막아 주었지만,

 * 반대로 미국 중심의 글로벌 원유 초과 수요의 상황은 공급자 우위(OPEC의 가격 결정권을 강화)로 변화

 

- [1차 석유 파동 > 석유의 무기화 / 2차 석유 파동 > 재고 확보 경쟁으로 유가 상승폭 확대]

 * 미국의 중동 전쟁 개입을 막기 위해 시작된 감산 조치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됨

  (유가는 1달만에 3달러에서 12달러로 상승 > (1973~1975) 미국의 GNP는 2년동안 6% 하락)

 *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촉발된 2차 석유 파동은 재고 확보 경쟁으로 유가 상승을 부추김

 * 석유 산업의  주도권은 산유국 정부와 산유국의 국영 석유 회사로 옮겨짐 (메이져 석유회사 주도력 약화)

 (석유 계약 형태 변화) 조광 계약 → 생산물 분배 계약으로 산유국 정부의 수익 강화
 * 조광 계약 : 원유를 시추하는 대가로 정부에 돈을 지불. 석유 생산, 가공, 판매의 수익은 석유회사가 얻는 계약
 * 생산물분배계약 : 생산되 석유를 산유국 정부와 나누는 계약 형태

WTI 가격과 주요 이벤트 - 메리츠 증권


 

[1980s~현재] OPEC의 암흑기  - 원유의 공급 과잉

- [70년대 유가 상승은 80년대 원유의 공급 과잉으로 이어짐]

 *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은 원유 가수요를 심화 시켰고, 유가 상승으로 타 지역 석유 개발을 부추김

   (2차 오일 쇼크 이후 원유 생산 수요가 높아져 북해, 멕시코만, 알래크카의 석유 개발을 부추김)

 * (1982년) 글로벌 경기 불황- 원유 수요 감소로, OPEC은 생산량을 줄이려 했지만 공조 실패

 * 1980년 대 이후 OPEC은 오랫동안 감산 합의에 실패하고, 감산합의 이행률은 평균 60%에 불과함

 

- [WTI의 선물 시장 등장 - OPEC의 가격 경쟁력 약화 / 산유국들의 증산을 통한 시장 점유율 확보 노력]

 * (1983년) 뉴욕상품 거래소에 WIT 선물 거래가 시작으로 석유 가격의 판도가 바뀜 (산유국 시장 지배력 약화)

 * 과거 OPEC이 석유 거래에서 독점적 지위로 가격 결정권을 독점하였고, 수요자는 OPEC의 가격을 받아들였으나,

 * WTI 선물 거래 등장으로

 (1) 시장 원리에 의해 가격이 결정 : 다수의 실제/투기적 수요자, 공급자가 가격을 결정

 (2) 금융 시장을 지배하는 미국-영국 중심으로 가격 결정의 헤게모니가 재편됨

 (3) 산유국들은 증산을 통한 점유율 확대를 통해 각 국의 시장 지배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으로 바뀜

 

- [셰일 혁명 - OPEC의 시장 점유울 감소 및 미국의 원유시장 지배력 강화]

 * (1980년대 초) Non-OPEC의 산유량이 늘면서 OPEC을 추월 > OPEC의 영향력을 약화

 * (2010년~, 셰일혁명) 미국 중심의 Non-OPEC의 시장 점유율을 높여 미국의 원유시장 지배력 강화

 * 2019년 미국은 원유 순수출국으로 전환 (셰일 혁명) > 미국이 중동의 원유 지배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짐

 

 

[참조] 한국석유공사의 「최 과장의 석유현대사」 1~2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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